금까지 국가브랜드는 개별 소비자들의 의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영국의 이 분야 전문가인 사이먼 안홀트는 국가브랜드를 "세계 각국의 개별 소비자들이 특정 국가의 비전에 주목하도록 할 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제품 및 서비스 등에 대한 품질을 신뢰하게 하는 대표적 소프트파워"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브랜드위원회(용어해설 참조)도 "국가에 대한 호감도, 신뢰도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최근에는 국력의 전통적 요소인 군사력, 경제력(하드파워)보다, 국가의 품격, 이미지(소프트파워)가 국가브랜드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같은 정의로 보면 국가브랜드는 매우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국가별로 국가브랜드에 관한 슬로건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웃나라 일본은 '신일본 양식'(Neo Japanesque),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보다 훌륭한 쉼터'(A Better Place to Be), 프랑스는 '새로운 프랑스'(New France) 등이 그것입니다. 한국도 2002년 월드컵을 맞이하여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를 주창한 적이 있지요.

국가브랜드는 측정이 가능한가요?

국가브랜드는 측정 기관마다 평가 항목이 다르고, 따라서 그 결과도 매우 상이합니다. 대표적인 국가브랜드 평가 업체로 꼽히는 안홀트-GMI는 정부 통치력, 국민성, 수출, 문화ㆍ유적, 관광ㆍ여행, 이민ㆍ투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가브랜드를 평가하는 반면, 퓨처브랜드는 안전성과 신뢰성, 친절함 등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산업정책연구원에서 국가브랜드 전략, 심리적 친근도, 제품ㆍ서비스 수출액, 관광수입 등을 고려해 '국가경쟁력지수'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국가브랜드는 어떤 방법으로든 측정은 가능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어느 정도 인가요?

얼마 전 안홀트-GMI가 국가브랜드 지수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50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5위, 교역 규모 세계 10위인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제 위상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의 국가브랜드 자산 가치를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이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브랜드 자산 가치는 2006년 기준으로 5,043억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일본(3조2,259억달러), 미국(13조95억달러)에 크게 뒤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브랜드 자산 가치 비중은 60% 수준으로 선진국들과는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고 국가브랜드 순위도 30위권에 머무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가 취약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이처럼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나타난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국가브랜드위원회 등 주관 부서의 기능이 아직 활발하지 못하고,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매체를 활용한 해외 홍보도 상당히 부진한 점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한류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반(反)한류, 혐(嫌)한류 등이 나타나고 있고, 다양한 국내 문화상품들의 세계화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기업 측면에서는 삼성전자가 한국 회사임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많을뿐더러, 국제 행사 개최 시 기업과 정부의 연계를 통한 국가브랜드 제고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관광분야에서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관광산업이 사치성 소비산업으로 전환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 국제행사 유치나 세계적인 국내 발 국제행사 부재 등이 국가브랜드 가치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민정책 부문에서는 단순 인력의 국적취득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고급두뇌에 대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국가브랜드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종종 '어글리 코리언'으로 폄하될 정도로 국민 개개인에 대한 품격 교육 및 관리가 미흡한 점이 큽니다. 2007년 세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해외여행 시 미성년 성매매뿐 아니라 명품 싹쓸이 등의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해외에서의 불법행위와 추태 등을 보인 일부 국민에 대한 강력한 규제 조치 도입은 지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선 정부 각 부처에 산재된 홍보기능을 통합ㆍ정비하고 체계적인 국가마케팅을 통해 국제회의나 이벤트를 유치하는 등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외 홍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통합적인 국가 마케팅을 위한 전문성 확보, 국가브랜드 슬로건 통합 등의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추진해야 합니다. 또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등의 글로벌 기업들을 활용함으로써 국가인지도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히트 상품에 태극기를 표시하는 방안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정부개발원조(ODAㆍ용어해설 참조) 등 경제규모에 걸맞는 대외협력전략을 마련하고 국제기구 진출을 확대하는 등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구촌의 안녕과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범국민 캠페인 실시 등을 통해 '어글리 코리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동경올림픽을 맞아 1963년부터 '작은 친절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를 통해 '친절한 나라 일본'의 이미지를 세계 각국에 정착시켰습니다.

한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정책 노력을 강화해 우리의 문화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 각지의 문화상품 발굴 등을 통해 한류 상품화를 촉진시키고, 지역 특성, 문화, 상품 등을 연계시킨 세계적인 축제 육성 등의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지적재산 관리 강화, 혈통을 중시하는 관행과 폐쇄주의적인 이민법 등의 개선도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풀어읽는 키워드
● 국가브랜드위원회: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국가브랜드 제고 전략을 세우기 위해 2009년 1월22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됐습니다. 국가브랜드 정책과 관련, 범 정부적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합니다. 또 관련 정책 사업의 효율적 집행을 지원하며 민간협력 및 국민의 참여를 확대시키고 강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공개발원조·공적개발원조라고 불립니다. 증여·차관·배상·기술원조 등 정부 차원에서 저개발국을 지원하는 모든 사업을 포함합니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향상에 기여해야 하며, 피원조국이 부담되지 않도록 자금 공여액 가운데 일부분은 무상으로 지원하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200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했는데, ODA를 받는 국가가 ODA를 주는 국가로 성장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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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4:46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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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10:39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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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머잖아 당신을 떠나, 나 머잖아 죽는대,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이 무서워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는데,
내 사랑이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
너무나 싫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영화 <국화꽃 향기>, 1999. 11. 9 희재의 일기장 中에서



 
* 배우 장진영(1971~2009)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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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0:39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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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17:23 Trackback 0 Comment 0

인생은 그 사람이 쌓은 조건들이 아니라 그가 견디어온 삶의 무게로 평가받아야 한다. 아주 어려운 삶을 살고도 편안한 얼굴과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게 바로 존경받는 삶일 것이다. 자신이 쌓은 조건이 하나라도 사라지는 게 두려워 비굴해지고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인간이야 말로 초라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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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7:19 Trackback 0 Comment 0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전직 신문기자였습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족벌언론'의 기자였습니다. 더구나 그 신문에 소속돼 있을 당시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 나와서도 여러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족벌 신문사들의 추악한 면들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신문들이 가진 언론으로서의 문제점과 그 신문들이 왜곡보도를 일삼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왜곡 보도와 여론 조작을 일삼는 한국 언론, 특히 찌라시 신문들의 보도 태도와 이 같은 보도가 일어나는 구조적 배경에 대해 한 번 정리해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욕구만 있을 뿐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면 영원히 그런 작업을 못하고 말겠다 싶어 지난 주말에 작심하고 펜을 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틈나는 대로 정리한 글을 부담 갖지 않고 그때그때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언론개혁'란과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연재해볼 생각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대략 6~7회 정도 연재하면 대충 큰 골격은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좀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겠습니다. 연재 주기도 일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아랫글은 첫 회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은 아래 링크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3&articleId=50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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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가장 효과적인 검열이 될 수 있다. (The "market" can be a most effective censor.)”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즈니 교수의 책 ‘The Problem of the Media' 225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광고주로서 기업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 대신 자본이라고 표현하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위 문장에서 맥체즈니 교수는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의 미디어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로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미디어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직접 일리노이주의 지역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신문방송의 교차 소유를 확대하려는 2003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조치에 대한 대중적 반란을 주도한 단체인 ‘Free Press’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그는 탈규제를 통해 생겨난 거대 독과점 미디어그룹들이 ‘국민에 앞서서 이익(Profit over People)'을 챙기기 위해 사회적 의제를 제한하고, 사실을 조작하며 본질을 왜곡해 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인 언론 자유를 극도로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같은 독과점 미디어그룹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 연방정부가 미디어자본의 압력 아래 미디어그룹들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독과점 구조를 만들어준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미디어들은 미디어정책에 대한 논의를 독점하고 소수 정치가와 기득권 위주의 미디어 방송을 실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9.11테러와 이어진 미국의 침략전쟁에 관한 미국 미디어의 보도 태도는 한 마디로 '정치적 선전선동(propaganda)'에 불과했다고 힐난할 정도입니다.

 

글의 첫 머리에 그의 활동과 주장을 소개한 이유는 그가 비판하는 상황이 한국의 미디어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비판하는 미국 사회의 미디어 현실은 주로 방송을 장악한 거대 미디어그룹들에 관한 것이고, 제가 볼 때 미국사회의 언론 자유와 보도의 품질, 그리고 시청자와 독자들의 선택권 및 다양성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가 비판하는 내용을 한국의 경우 신문들, 특히 기득권 신문들에서 훨씬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신문들은 광고주의 압력을 매우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난 번 글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왜 그런지를 신문사의 수익 구조와 연관해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구독료 수입이나 각종 부대사업과 광고수입이 거의 반반씩 균형을 이루고 있는 ‘뉴욕타임스’ 등 선진국 신문과 달리 국내 신문은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품 등을 통해 구독자를 유치하는 관행에 젖어 있는 국내 신문들의 경우 구독료 수입은 거의 그대로 신문지국 지원 및 ‘확장 비용’ 등으로 나가므로 사실상 100%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신문사 경영이 광고주의 압력에 심각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렇게 광고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각 신문들, 특히 기득권 메이저 신문들은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을 중심으로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신문을 봐야 기업이 비싼 단가의 광고를 싣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문사에 있으면서 이 같은 주문들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강남 독자층을 공략해야 하니,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기사를 발굴하라’는 지시는 매우 점잖은 주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지체장애인 이야기는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 빼’ ‘외국계 명품 브랜드 광고 유치하기 위해 고급 패션과 외국계 화장품 기사를쓰라’는 식의 주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나중에는 정말 이런 주문들이 무감각해지는 수준까지, 그래서 기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과 ‘동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런 기사들을 생산하게 되는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재산세 문제나 종부세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정부의 투기 억제대책을 ‘강남 때려잡기’라고 비판하는 것도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방향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기득권 지향적 보도--->구매력 있는 독자층 확보--->고가 기업광고 유치--->기득권 지향적 보도로 이어지는 왜곡된 순환구조가 국내 기득권 신문들의 보도태도를 오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뉴스포털, 무가지 등 경쟁매체들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이들 신문들의 구독률과 열독률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광고유치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신문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슈가 부동산 문제입니다. 신문들의 영업 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동산 광고는 신문사 경영 측면에서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동산 광고는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한 2001년 이후 학습지 광고, 유통(백화점) 광고 등을 제치고 신문 광고 매출 기여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메이저신문에서 부동산 광고의 매출 기여도는 더 높습니다. 메이저신문사들의 경우 지난 6~7년 동안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 광고 매출의 35% 전후를 차지해 사실상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들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아파트 분양 정보나 가격대 등의 정보는 고지성이나 시의성 측면에서 신문이 가장 적절한 매체로 평가받습니다. 이 때문에 각 신문사들은 부동산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여름 휴가철 등 비수기를 빼고는 매월 부동산 광고 특집면을 별도로 제작할 정도였습니다. 부동산광고가 신문 광고매출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신문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강한 유인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반시장, 반소비자적인 제도로 꼽히는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를 신문들이 달가워할 수 없는 사정도 부동산 광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 신문사의 한 광고국 직원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 스스로의 자금력으로 70%이상 시공한 뒤 광고를 할 수 있게 돼 있어 광고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신문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도입을 막고 싶은 제도가 후분양제”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한 전직 건설업체 직원의 증언을 통해서도 언론과 건설업체와의 유착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라갈수록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인다. 부동산 값이 뛸수록 분양가를 높이는데도 유리하니 부동산 값을 띄우기 위한 여론 조작도 한다. 고도의 전략인데 업체가 땅을 산 지역에 대해 ‘유망개발정보’ 등의 형식으로 언론, 특히 신문에서 보도되게 한다. 건교부의 중장기 전략을 분석하는 자료를 내고 화성 동탄과 행정수도 부지 등이 터지면 얼마나 오르고 식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거다. 이렇게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만든다. 홍보팀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접대하면서 애로 있다, 도와달라고 호소하거나, 현금을 쥐어주면서 어떤 기사 나갈 때 우리 회사 부각시켜달라 이런 식으로 부탁도 한다. 물론 부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접대가 통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대형업체들은 홍보팀을 통해 관련 기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분양가를 산정할 때 광고비를 간접비의 1~2% 정도로 산정한다. 광고비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반드시 광고를 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안 해도 분양되는데 웬만하면 전면광고한다. 분양 끝난 뒤에도 사례광고를 한다. 메이저 신문은 기본이고 경제신문에도 대부분 광고한다. 언론에는 괜히 밉보이면 안 되니 광고하는 거다. 공사 프로젝트 관련해서 주위 민원도 있고 산업재해도 발생하고 회사 비리도 드러날 수 있으니 급할 때를 대비해 광고를 통해 언론사와 미리 유착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광고 유치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주택 및 부동산 개발사업 참여, 그리고 다량의 부동산을 보유한 언론사 사주들의 이해관계도 객관적인 보도를 힘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세계일보, 한국일보, 심지어 언필칭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신문까지 현재 상당수 언론사들이 직접 주택 개발 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경우에는 “조선일보가 정말 떼돈 버는 방법은 방송 참여가 아니라 코리아나 호텔과 주변 조선일보 건물들을 한데 묶어 용도를 변경한 뒤 거대한 주상복합단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뿐인가요? 상암DMC의 첨담 업무 용지의 경우 땅값에서만 몇 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각 언론사의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그 업무용지를 분양받기 전 상암DMC사업과 그 사업을 벌이는 서울시를 거의 ‘찬양’하는 수준의 기사를 잇따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과정을 거쳐서 족벌 언론사들은 대부분 상암DMC의 노른자위 땅을 분양받았습니다. 왜 청계천 사업으로 자사 사옥의 부동산 가치가 껑충 뛴 일부 신문들이 대선 전 ‘청계천찬가’와 ‘이명박 찬가’를 그토록 열심히 불러댔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처럼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언론사들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족벌 언론사들의 사주들은 모두 엄청난 ‘부동산 재벌’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 종부세가 오르면 언론사주들의 부담은 매우 커집니다. 이들 언론사주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액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려우나 그 일단이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부 초년병 시절 수도권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지방 주재 선배가 사주집안의 부동산과 관련된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소위 기득권 신문들의 종부세 비판 기사들은 고가 부동산 소유주인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지만, 언론사들은 몇 년전까지 ‘공급 부족론’이라는 건설업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건설물량 확대를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또 집값 거품을 더 커지기 전에 꺼뜨려야 할 시기에도 정부에 끊임없이 각종 주택 사업 및 은행 대출 관련 규제완화를 주장해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해왔습니다.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지고 있는 2008년 상반기 이후에도 이런 식의 보도는 약간의 변화를 거쳐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집값 거품이 붕괴하면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사실상의 집값 부양을 요구한다거나 집값 하락 소식을 전하면서도 집값의 급격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또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가면 2~3년 후 공급이 줄어 집값이 폭등한다”며 정부가 나서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같은 주장이 공급 과잉 해소를 지연시켜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장기화하고 결국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발 등의 불 끄기에 급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 기득권 언론들은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 건설업체들이 살아야 (광고수입이 늘어나) 자신들이 산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많은 신문들은 줄기차게 ‘집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집을 사라는 식으로 유도하는 기사를 자주 냅니다. 물론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셈입니다. 또 광고주인 건설사들을 위해 ‘잘 고르면 알짜배기’라는 식의 미분양 물량 해소에 도움 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쓸 말은 많지만 글이 길어지니 이 정도에서 줄일까 합니다. 이번 주제는 다음 글에서 제 개인적인 경험들을 중심으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국의 언론들, 특히 일부 기득권 신문들은 절대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고비마다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철저히 희생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너무 강합니다. 앞서 소개한 맥체즈니 교수 등 세 명의 미디어학자가 편집한 ‘The Future of Media'라는 책의 서문을 쓴 빌 모이어스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특수 이익집단이 법을 무시하고 일반대중들의 복지를 훼손하면 사회적으로 부채가 생겨난다. 그런데 그 부채는 우리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부채다. 그리고 그 부채의 총합은 바로 우리의 시민권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거대 미디어 기업집단들(conglomerates)이 우리가 보고, 읽고, 듣는 것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거대 사업체로서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정치적 과정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포함해서-을 증대하기 위해 매체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좀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중략) 상업적인 표현(commercial speech)만이 유일하게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된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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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4:08 Trackback 0 Comment 0

앞 글 경제학과 이치에서 현대 주류 경제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전개했습니다그 글을 통해 제가 하고자 했던 것은 현대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일종의 해체 작업이었습니다.

 

경제학 전공자이거나 경제학에 대해 깊이 공부하신 분들은 현대 경제학의 토대가 상당히 허술한 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실 것입니다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기 쉽습니다.

 

앞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칠 수 있는데현대 경제학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낭패를 볼 수도 있겠기에 해체 작업을 시도해 본 것입니다.

 

글이라는 표현수단의 한계그리고 짧은 분량 안에 완결을 지어야 한다는 한계로 인해 저의 표현들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저의 글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셨던 분들에게는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현대 경제학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정책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환상을 품고 있는 상태로 혼란스런 상황들을 맞이하게 되면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뻔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벌써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전문가일수록 제대로 보지 못하고똑똑한 사람들일수록 보지 못합니다.

 

벌거숭이 임금님 동화가 있습니다최근 들어 드는 생각은동화 속의 어른들은 정말로 임금님이 투명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을 듯 합니다병사들이 무서워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임금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갖는 어른들의 선입견이 눈을 가렸습니다정말 투명옷을 입은 걸 거야설마 임금님이 벌고벗고 있기야 하겠어하는 생각이 눈을 가렸을 것입니다.

 

아이에게만 객관적인 실체가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겐 임금님이란 존재가 그닥 선입견을 심어주지 못했으니까요.

 

혜안(慧眼)이라는 것은 결국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아이의 눈으로 보는 것맑은 눈으로 본다는 것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손가락만 보기 쉽습니다.

 

자신의 희망이 관찰에 반영되어 시야를 흐립니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눈을 가립니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자신의 전문지식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던 전문지식이었습니다그런 만큼 비상시가 되면전문가는 일반인들 보다도 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 사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섣불리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근본원리를 익히고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그 다음엔 이치에 근거해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근본원리를 붙들고 자기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그래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듯한 혼란 속을 헤쳐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주의하셔야 할 게 통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통념(通念)이란 보통 때의 생각입니다.보통 때는 제대로 작동되던 생각입니다하지만 보통 때가 아닌 위기시가 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통념을 근본원리이자 이치라고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제 글에 나왔던 사례를 보면,

 

중앙은행이 통화를 대량 공급하고 있으니 -> 물가가 오를 것이다주식.부동산도 결국 오를 것이다,

 

이게 통념입니다통념의 흔한 구조는중간단계가 있는데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중간단계가 있는데중간단계를 인식하지 못해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생략된 중간단계는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이었습니다.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  ->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  통화량(본원통화+신용증가  

->  물가상승(주식,부동산 상승), 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은 자연스럽게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 통화량 증가,로 이어졌을 텐데 위기 상황을 맞아 중간 단계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으로부터 막바로 인플레이션을 떠올리는 것은 결국 통념에 빠진 것입니다.  

 

두번째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금리도 내린다도 통념입니다역시 기준금리를 내리면 ->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 시중금리가 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변동 -> 은행채의 수요와 공급 변동 -> 은행채 금리 변동 -> CD 수요와 공급 변동 -> CD 금리 변동 -> 시중금리(담보대출금리변동

 

평온한 시기에는 중간에 거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무리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금리가 내리는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금리도 내린다’는 통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비상 시기에는 통념(내지 고정관념)을 가지는 것은 위험합니다평온한 시기에 무리없이 작동하던 중간과정이 비상 시기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유념하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다른 경제현상(어쩌면 사회현상이나 인간관계에서도)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곤 합니다.

 

 

이제 다음 글부터 최종 시나리오를 제시할 때가 되었네요.

 

제가 제시해드리는 시나리오에 대해서근본원리와 이치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기본지식과 근본원리들은 저의 앞선 글들에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시나리오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계레 신문에 실린 다음 기사를 보시면 경제전문가들이 08년에 나타난 현상의 분석과09년에 나타날 수 있는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30129.html

 

저의 다음 글에서 이 기사에 실린 여러 의견들 중 제가 보기에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저의 의견을 제시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것이 저의 의견과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을 비교하실 수 있으니 보다 균형잡힌 판단을 내리시는 데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08년 현상 분석과 09년 예상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제가 틀렸다고 생각할까요?

 

시험문제입니다 ^^ 일종의 오픈북 테스트인 셈입니다. (이 글에 댓글로 답안들을 제출해보시는 것도 재미있겠네요필수사항은 아닙니다 ^^)

 

이 얘기는 제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이 기사에 의견을 제시한 경제전문가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얘기입니다결국 최종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인 셈입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실 수 없다면 결국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요 ^^

 

근본원리와 이치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을 내리십시오.

 

제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한 안내:

제 글은 처음부터 다 보셔야 합니다. 제가 설명드리는 사항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 보시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리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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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00:03 Trackback 0 Comment 0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해 경제학은 상당한 무력증을 보이고 있습니다왜 그럴까요이 글에서는 그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시사점을 얻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경제學이라는 것이 學問으로서 완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실 필요가 있습니다경제학을 수학이나 물리학화학 같은 학문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경제학은 이론적인 체계가 전혀 완성되어 있지 못합니다예를 들어 케인즈 학파와 시카고 학파(신자유주의 학파)가 현대 경제학의 대표적인 두 학파라고 할 수 있는데이들은 동일한 경제현상을 놓고도 서로 다른 해석과 대책을 내놓습니다.

 

가령,

30년대의 대공황에 대하여 케인즈 학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봐라대공황 때 정부에서 개입해서 훌륭하게 경제를 복구시켰다.

 

같은 대공황을 놓고 신자유주의 학파는 이렇게 말합니다봐라대공황 때 정부의 삽질에도 불구하고시장은 자동조절기능을 발휘하여 스스로 복구됐다.

 

같은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이렇게 상반된다면경제學은 아직 學問으로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사회에서 벌어지는 경제현상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들이 있다정도로 이해하시는 것이 실상에 가깝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은 1980년대 이래 전세계에 걸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그런데 이번 미국발 전세계의 경제위기로 인해 틀린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전세계에 적용되던 이론이 틀린 것이라면역시 스스로 學問의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IMF는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경제학자들과 경제관료 출신들이 모여 있는 국제기구입니다. 1982년에 제3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외채위기에 빠지게 되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입니다그로 인해 IMF에서 권고하는 경제개혁조치들을 취합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이전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경제성장률도 이전보다 더 떨어지고빈부격차는 더 확대되고 국제금융자본들만 배를 불립니다이러한 내용은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보면 잘 나와있습니다요새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인데요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 중에 이전보다 좋아진 나라는 우리 나라 정도가 유일합니다.그래서 IMF에서 우리나라 가지고 엄청 선전합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나라가 좋아진 것은 IMF의 권고안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IMF의 잘못된 권고안을 극복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IMF의 잘못된 권고안에도 불구하고 좋아졌던 것입니다이런 점은 IMF도 사후에 인정한 내용입니다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우리 민족 정말 저력있습니다.

 

요점은 IMF에 모여있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전직 경제관료들이 경제학 이론을 적용해봐야 전혀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경제학 이론이란 것이 별 게 아닌거죠.

 

실제로 경제학을 공부해 보면 별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네요 ^^; )

 

가끔 상당히 복잡해보이는 수식들이 나오기도 하는데가만히 무슨 얘기인지 뜯어보면 별 게 아닌 얘기를 일부러 복잡해보이게 수식화시켰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어찌 보면경제학을 잘 모르는 문외한들에게 경제학이 꽤 대단한 학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수식들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회과학이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이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수학과 자연과학을 닮고 싶은 무의식적인혹은 의식적인 열망이 반영된 것이지요.

 

노벨상은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습니다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1776년에 출간되었으니 노벨상을 받을 기회가 없었는데만약 국부론이 1901년 이후에 나왔다면 어떤 노벨상을 받았을까요?

 

정답은 노벨 문학상입니다.

 

그 만큼 국부론의 문장이 대단하고그 내용도 풍성하기 때문입니다한편으로 이 말은 은근한 비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만들어질 때 경제학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969년에 없던 상이 새로 추가된 것인데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꽤 있습니다현대 경제이론이란 것이 전혀 현실과 들어맞지도 않는데이를 포함시키는 것은 노벨상의 수치라는 것이죠.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블랙 숄즈가 공동창업자로 참여했던 롱텀캐피탈메니지먼트 (LTCM) 1998년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례는 유명합니다.

 

또 하나노벨 경제학상이 주어지는 연구 업적을 보면 모두 수리적인 논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현대 주류 경제학의 수학 편향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국부론에는 수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조크입니다현대 경제학의 우습기만 한 편견(별로 정교하지도 못하면서 수리를 숭상하는…)을 꼬집는 것입니다.

 

현대 경제학 중에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우환상을 심어줄 뿐이라는 이유로 수학의 사용을 거부했는데 이 때문에 주류에서 밀려나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해 더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Cimio님 블로그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imio.net/517

 

Cimio님은 아고라에도 글을 올려주시고 계신데개인 블로그에도 좋은 글과 자료들이 많습니다.

 

이래 저래 노벨 경제학상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저도 생각합니다노벨 경제학상이 폐지되고 경제학이 좀 더 겸손해져서 학문의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날 때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잘못된 경제 정책의 폐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제 위기를 맞이하여 현대 주류 경제학이 무력증을 보이는 두 번째 이유가바로 이 주류 경제학의 편견과 관련이 깊습니다.

 

현대의 주류 경제학은 그동안 경제현상의 본질근본원리이치를 소홀하게 여겼습니다.

 

가령 돈(화폐)이란 무엇인가주류 경제학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합니다그들은 돈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실제로 나타나는 경제현상을 관찰함으로써변수들 간의 관계를 찾아내고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돈이 무엇인지 고민하느라고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비실용적이라고 여깁니다그리고는 일반인들을 주눅들게 만들 복잡해보이는 수식을 들이밉니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학파는,

벌어지는 현상들을 관찰하여 변수들 간의 관계를 찾아낼 수는 있다하지만 눈에 보이는 그 관계들이, 보다 근본적인 법칙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그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수식들이라는 게 그럴 듯한 포장물이고 장식품일 뿐 본질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보고수식의 사용을 거부합니다대신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관찰을 통해 파악한 관계들이 근본적인 법칙들과 어떻게 관련을 맺는지 밝혀내고자 합니다.

 

숫자수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줍니다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마치 알고 있는 듯한 환상현실이 매우 잘 통제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심어줍니다.

 

산업문명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경제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모두가 경제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삽니다문화역사철학정치사랑평등,박애연민 등등 중요한 단어가 얼마든지 많은데도 안중에도 없습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판국에 ~~  ,

 

이 한 마디면 모든 말을 침묵시킬 수 있습니다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모순된 현상입니다현대에 이르러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경제적으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럼 경제’ 문제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최소한 과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도 거꾸로 사람들은 경제에 관해 더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옆 길로 좀 샌 느낌이네요 ^^

 

하여튼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정부의 경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주류 경제학은 그 위세가 대단해졌습니다이들은 일견 복잡해보이는 수식을 들이대며 폼(?)을 잡습니다.

 

어찌 보면 과거에 샤먼이 필요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현대에는 경제학자들이 제공하는 복잡해보이는 수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우리 모두를 안심시켜주는 숫자의 환상이 필요한 것이지요.

 

평화로운 시기에는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의 실용적(?)인 태도로도 문제가 없습니다하지만 진짜 친구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이제 위기의 시대를 맞아 현대 경제학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습니다.

 

현대 경제학이라는 것이 모래 위에 쌓아올린 바벨탑일 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문제는 모래라는 허술한 토대 위에 바벨탑을 너무 높이 쌓아올렸다는 점입니다.

 

이번의 경제위기는 현대의 주류 경제학이 그냥 지나쳐버렸던 허술한 토대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모래라는 허술한 토대에 문제가 발생하니 그 위에 화려하게 쌓아올린 바벨탑은 단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은 경제현상의 본질과 근본원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지나쳐버렸기 때문에 이번의 경제위기에 대해 단 한 마디 통찰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제 위기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으려면 우리들은 19세기 이전 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유일한 예외가 본질을 가지고 씨름했던 오스트리아 학파입니다.

 

애덤 스미스(1723-1790)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토머스 맬서스(1766-1834)

 

를 아울러 고전학파 경제학이라고 부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8세기의 사고로부터 뭐 배울 게 있을까 싶으신가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200년 전으로부터 우리 인간의 본성이 많이 달라졌을까요?

더 거슬러올라가 2000년 전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이 많이 달라졌을까요?

 

우리 인간의 지혜가 기원전 6세기경에 태어난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기원 0년에 태어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더 발전한 것이 있을까요?

 

기원전 6세기의 공자기원전 4세기의 장자의 사상이 나온 뒤에 동양에서 이를 뛰어넘는 사상이 나온 게 있을까요?

 

기원전 5세기의 플라톤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나온 뒤에 서양에서 이를 뛰어넘는 사상이 나온 게 있을까요?

 

오늘날까지도 문학은 기원전 그리스의 서사시와 비극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전으로부터 별로 나아진 게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학도 18세기의 고전학파로부터 거의 반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오늘 겪고 있는 경제위기를 해결하려면 18세기와 19세기의 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시기는 경제학의 태동기이므로 경제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근본 원리에 대한 생산적인 사유가 넘쳐났습니다그들의 사유로부터 한 줄의 통찰이라도 얻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확히는 모르나 얻어들은 바로는제가 앞에서 든 예 말고도인간이 이룩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비조를 뛰어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압니다정말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눈 앞에 어른거리는 화려한 물질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테크닉적인 문제들일 뿐근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 인간의 역사가 과연 진보를 보이고 있는가고민해볼 문제입니다.

 

1,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 서구 사회는과연 인간의 문명이 진보를 하긴 하는 것인가,심각한 회의에 빠졌다고 합니다저는 혹시 이번 경제위기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최소한 우리들 인간이이성의 발전진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유보하고 좀 더 겸손해져야 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경제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리들을 제시함으로써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 하나를 열어젖힌 책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한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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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에는 엄청난 분량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종교적.국가별 역사에 대한 상식들이 꽉 차 있다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지식과 교양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이 책을 읽는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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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을 완역한 수행 교수님의 역자 서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제 생각 중 하나는이 책을 이치를 따져보는 법’,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그렇다면 학생들을 위한 논술교재로도 최고가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노동가치설을 제시한 것은나중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원래 주식중개인 겸 투자자로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입니다그러던 중 우연히 국부론을 읽게 된 것을 계기로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교우위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며이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한계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함으로써 나중에 한계효용학파라는 일군의 학파가 나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리카도는 친구인 맬서스에게 대박주(?)를 찍어준 일화로도 유명합니다맬서스는 인구론이 너무 유명한데인구론의 결론이 아주 비관적이지요그런데 원래 비관적인 경향을 타고 난 것인지리카도가 찍어준 대박주도 조금 오르니 금방 팔아버려서 별 재미(?)를 못 봤다고 합니다.

 

인구론이 너무 유명해서인지 맬서스가 경제학자라는 사실은 잘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그가 경제학 분야에 남긴 족적은 작지 않습니다.

 

맬서스는 그의 저서 경제학 원리를 통해서 공황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했습니다그는 공황의 원인으로 과소소비설을 제기함으로써케인즈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총수요 관리정책을 내세웠던 케인즈 혁명은맬서스의 과소소비설을 좀 더 발전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앞선 글들에서 소개했던 미국의 초과수요 문제에 대한 앞선 고민을 맬서스와 마르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맬서스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업생산의 급격한 증진은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고이를 방지하는 시책으로서 비생산적인 소비가 필요하다(미국의 초과수요와 유사한)는 주장을 전개했습니다생산은 담당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층도 경제적 유용성을 갖는다는 주장입니다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당시에 고민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또한 그는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급(생산)이 늘어나는 데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야 되는데그런 상태는 제대로 된 분배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하는 중요한 통찰을 남겼습니다.

(미국에서 뉴딜 정신에 입각한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가 취해진 것은 맬서스의 통찰에서 착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경제 성장의 결과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으면 생산의 증가를 커버할 수 있는 소비의 증가가 수반되지 않으므로일반적 과잉생산이 발생하여 공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미국 경제가 황금시대(1947~1972)를 지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 98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제도를 받아들인 이후한국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를이보다 더 명쾌하게 본질적인 차원에서 설명한 내용은 없다고 봅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맬서스의 이 언급을 몇 번씩이고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고전학파 경제학을 살펴보면이후에 나오게 되는 마르크스 사회주의 경제학의 맹아를 품고 있었고한계효용학파케인즈학파의 실질적 내용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또한 200년 뒤 오늘날의 경제 위기에 대한 통찰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탁월한 통찰력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리카도의 경우는 정규교육도 받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글을 잘 쓸 수 없었다고 하지요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내는 데에 친구인 제임스 밀(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통찰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그의 시대가 이치를 따지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계몽주의의 시대입니다계몽주의 시대는 인간의 이성을 믿었습니다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서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당시는 신사들이 책을 열심히 읽던 시기이기도 합니다그들이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은 오늘날에 비해 턱없이 적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들은 독서를 통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철학적인 깊이를 갖추고자 했습니다독서를 통해 사고하는 힘이치를 따져보는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치를 따지던 시절전문화(파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시절경제현상의 근본 원리와 본질을 고민하던 시절,

 

지금 경제위기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그 시절의 고민과 통찰로 돌아가야 할 듯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과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써야겠습니다.

 

간단히만 얘기해보면자본주의 시스템의 공황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연구가 가장 탁월한 것으로 공인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학자경제관료들은 당장 공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본론을 공부해야 합니다좌파(혹은 좌빨?) 경제학이라 배격할 것도 아니고, 19세기의 골동품이라 배격할 것도 아닙니다.

 

자본론 안에는 놀랍도록 생생하게 지금 여기의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와 실용적인 통찰이 가득합니다자본주의 초기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화폐란 무엇인가신용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그 결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경제위기의 본질에 대해 진작에 경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 이후로는 경제학이 발전했다는 게 모두 허상인 듯 합니다얕은 테크닉 정도가 발달했을 뿐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19세기까지 경제학이 했던 고민들입니다.

 

우리 한국 경제학은 불행하게도 19세기 이후부터의 경제학만 수입했습니다서양의 최신 경제이론(이번에 다 붕괴해버린)을 수입하는 데만 급급한 모양새입니다국내의 경제학은 스스로 두 발을 딛고 서지 못합니다스스로 사유하지 못합니다.

 

지금 국내 경제학계에 필요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 경제학의 원전을 공부하는 것이라 보입니다경제학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의 원전으로 돌아가서 근본원리를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신용경색이란 단어를 언급하면서지난 100일 동안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을 다 목격하면서도신용 창조 붕괴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어이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

 

신용이 무엇인지, ‘화폐란 도대체 무엇인지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유럽과 미국은 공황을 여러 번 겪어보았습니다우리는 단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습니다연구도 전혀 시도되지 않았습니다실제로 닥쳐오면 큰일입니다.

 

한국의 경제학자들과 경제관료들에게당장 국부론, 자본론을 비롯한 원전으로 돌아가 공부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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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00:02 Trackback 0 Comment 0

안녕하세요?

 

이 글에서는 역사의 맥락 속에서 경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역사의 맥락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것은 산업자본가’ 그룹입니다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입니다이들은 언제 태어났을까요?

 

정답은 산업혁명 이후부터입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본격화된 산업혁명은 산업자본가’(부르죠아)라는 신흥세력을 낳습니다당시 사회 내에 새로이 생겨난 이 신흥세력들은 당시의 기득권세력들에게 탄압을 받습니다.

 

당시의 기득권세력은 절대왕정 + 상업자본가 + 교회의 연합세력입니다이들은 중상주의와 신의 섭리라는 탄탄한 이론적사상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절대왕정은 말합니다국가의 부는 금의 양으로 결정된다이걸 국가 내에 쌓으려면 금이 나가는 걸 통제하고금이 들어오는 걸 권장해야 한다즉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왕정 체제 하의 정치 세력이들과 결탁한 상업자본가들입니다상업자본가들에 도전하는 신흥 산업자본가들은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억압 당합니다)

 

교회는 말합니다인간은 불완전하고 탐욕스런 존재이다세상 돌아가는 걸 인간의 탐욕에 그대로 맡겨두면 세상은 타락하고 만다신의 섭리에 따라 세상을 통제해야 한다.

(그 결과 이익을 보는 것은 성직자 계급입니다)

 

역사의 전면에 새로이 등장한 산업자본가라는 신흥세력은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경제분야에서 역량을 계속 강화하고 있었지만굳건하게 자리잡은 기득권세력의 논리와 사상체계에 맞설 수 있는 대항이론과 사상체계가 없었습니다쉽게 말해 뭔가 상당히 억울하긴 한데뭐라고 따져야 될 지 모르겠다는 상태였습니다.

 

1776,

영국의 관세청에 근무하던 한 직원이 국부론이라는 책을 써냅니다.

 

국가의 부는 쌓아놓은 금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맞다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인간의 탐욕에 맡겨놓는 것이 좋다각 개인이 자기의 이기심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위해 최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이론적 배경 설명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 이에 따른 가격의 자동조절 기능즉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설명합니다.

 

그 논리적 결과는 국가의 경제 활동에 대한 개입(보유한 금의 양을 늘리려는)은 불필요한 것이며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이 관세청 직원은 연말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연회장에 갔더니 영국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영국 내의 모든 산업자본가들이 모여 있습니다그런데 그가 연회장에 들어갔더니 수상을 비롯하여 모두가 기립을 합니다.

 

부담스러운 직원은 말합니다. “여러분왜 이러십니까부디 앉아주십시오.”

수상이 말합니다. “스승이시여스승께서 먼저 앉지 않으시는데어찌 저희들이 먼저 앉겠습니까?”

 

애덤 스미스가 쓴, 이 한 권의 책으로 전 세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산업자본가 세력은 이제 자신들만의 대항논리와 사상체계를 갖추게 됩니다이는 중상주의 사상체계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습니다그들은 중상주의와 기득권 세력을 아울러 구체제라고 몰아부칩니다.

 

이제 상업자본가들과 절대왕정교회가 주도하던 중상주의 체제가 몰락하고산업자본가들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새로운 세상의 규범으로 자리잡게 됩니다교회 조차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의 연관성을 말하면서 산업자본가들의 논리에 발을 맞추게 됩니다.

 

이제 사회에는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굳건하게 자리잡게 됩니다그런데 이들은 애덤 스미스를 스승이라 하고국부론을 금과옥조로 여겼지만애써 한 가지 사실은 모른 체 합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실패에 대해 얘기합니다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조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장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완전 경쟁을 얘기하려면 출발선이 동일해야 한다출발선이 동일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배려가 필요하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다시는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이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도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안에서 시장의 실패와 국가 개입의 필요성’,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산업자본가 세력들은 이 부분은 애써 모른 체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야수’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19세기에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8시간까지도 노동에 내몰립니다그렇게 일해도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고 간신히 연명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부녀자노약자어린아이들도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얻기 위해 동일한 노동조건에 내몰립니다.

 

공장의 노동환경은 열악했습니다노동자들은 석탄가루를 마셔가며졸린 눈을 비비며 야간